며칠 전 3프로TV에서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 투어를 진행한다는 것인데, 뉴욕 증권거래소와 월스트리트, 보스턴의 MIT와 하버드까지 둘러보고, 심지어 김프로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아 대략 1천만 원쯤 된다고 해서 조금 움찔했지만, 남은 자리가 있다고 하니 일생에 한 번쯤은 해볼 만한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 계발과 견문을 넓히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투어 계획 이야기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미래 산업’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특히 요즘은 반도체와 인공지능이 국가 경쟁력의 판도를 결정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나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AI와 반도체 분야의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컴퓨팅 파워가 곧 AI 발전의 핵심 기반이 되면서 반도체는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고, 그에 맞춰 기업과 대학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문 인력을 키우려 애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인공지능이나 반도체 관련 학과가 예전만큼 인기가 있지 않고, 수도권 대학 쏠림과 의대 선호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탓에 AI·반도체 분야의 인재 풀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나 오픈AI의 샘 알트만처럼 세계적인 리더가 나오기엔 제도와 문화, 교육 과정이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카이스트 연구실에선 영재 트랙 출신과 일반 대학 졸업생을 함께 연구팀으로 구성했을 때 상당히 좋은 성과가 나왔다고 한다. 서로 다른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융합할 때 혁신이 생긴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아직도 교수 평가가 논문 실적으로만 매겨지거나 기업의 KPI가 매출이나 단기 성과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등, 연구와 개발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연구 과정에서 실용성과 창의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워야 할 기초 과학(물리·화학·수학)과 컴퓨터 구조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채, 문제 풀이식 입시에 매몰되는 교육 문화 역시 AI·반도체 전문가를 육성하기엔 걸림돌이 된다.
그렇지만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지금, 오히려 답은 분명해 보이기도 한다. AI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인공지능을 만들거나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 계속 필요한 건 확실하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른 시일 내에 자동화되기 힘든 업무(예컨대 오토바이 배달 같은 현장성 높은 영역) 역시 살아남을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국가가 집중해야 할 분야는 당연히 AI를 개발하고 반도체 기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적으로 선형대수, 확률과 통계, 미적분 등에 대한 탄탄한 지식이 필수라는 말이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맞물려 돌아가야 최적화된 AI 시스템이 나오고, 그래야 구글,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만들어내는 기술력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한 분야만 깊게 파는 게 아니라, 반도체 공정과 칩 설계, 컴퓨터 아키텍처, 슈퍼컴퓨터 구성, AI 알고리즘 같은 여러 단계를 두루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단기간에 완성하기란 쉽지 않다. 교육이 바뀌고, 기업 환경이 변하고, 연구와 개발이 충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
가끔은 젠슨 황이나 샘 알트만이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가진 창의성과 도전 정신, 그리고 풍부한 기술적 배경을 뒷받침해줄 탄탄한 환경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과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우리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국립대나 과학기술원 중심으로 AI·반도체 관련 학과를 대폭 늘리고, 학생들에게 학과 선택의 자유를 넓혀주며, 기초 과학 위주의 탄탄한 커리큘럼을 제공한다면? 기업도 소프트웨어·AI 엔지니어를 단기 매출이 아니라 장기 성장 관점에서 대우하고, 연구 성과를 폭넓게 평가해주는 조직 문화를 정착한다면? 여러 가지 ‘만약’이 달성된다면, 어쩌면 새로운 젠슨 황과 샘 알트만이 한국에서도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주사위는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고 본다. 교과서적이지만 교육, 기업 문화, 인재 양성 전략을 대대적으로 손질하지 않으면 반도체와 AI가 좌우할 미래 경제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인공지능 시대에 안전한 직업은 ‘AI를 개발하는 이들’과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이들’ 그리고 ‘자동화하기 까다로운 영역’ 정도밖에 없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마저 나온다. 어쩌면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변곡점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해외 견학을 통해 직접 현장을 보고,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은 희망적이다. 언젠가 젠슨 황 같은 혁신가가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도록,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우직하게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작은 관심과 도전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을까. 3프로TV 미국 투어가 그 작은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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