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되는 물가 지표를 들여다보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다시 꺾이지 않고 오히려 상승하는 듯하다. 예전에는 경기 둔화 신호만 조금 보이면 “연준이 곧 금리를 내릴 테니 자산시장이 반등할 것”이라는 낙관적 분위기가 깔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예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언제 금리를 내릴지 불확실해졌고, 연준 내부에서도 ‘앞으로는 조금 더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잡은 뒤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말쯤부터 시작될 것이라던 연준의 완화 사이클이 생각보다 굼뜨고 보수적으로 진행될 것 같다는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런 금리 환경은 이미 미국 증시와 채권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주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잘 안 잡힌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락하거나, 국채 금리가 이례적으로 큰 폭으로 뛰는 모습을 보이는 날이 부쩍 늘었다. 얼마 전엔 뜨거운 경제 지표가 나오자 주식시장이 -2%대 낙폭을 보여 깜짝 놀랐다. 선물시장은 아예 2025년에 0.25%p쯤 겨우 내릴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는데,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흐름이다. 그만큼 시장이 연준 발언이나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경기침체가 확실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샤의 법칙 같은 전통적 경기침체 시그널이 작동할 듯하더니, 최근에는 실업률이 다시 떨어지면서 의외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소위 ‘장단기 금리 역전’ 지표를 통해 추정하는 경기침체 확률도 한때 40% 넘게 나왔다가 지금은 30% 안팎으로 낮아진 상태다. 기업들의 투자나 고용도 의외로 견조하게 유지되는 편이고, 소비 지출이 줄지 않고 있어서 “이번에는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큰 침체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낙관적 관측이 점차 부상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중립금리를 예전보다 더 높게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정부 부채 증가, 탈세계화 등 구조적 요인이 겹쳐서 미국 경제의 ‘기본 금리체계’가 이전보다 상향 조정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금리가 과거처럼 극단적으로 낮아지는 일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미국 못지않게 일본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한때는 무제한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로 대표되던 BOJ가, 최근 들어 수익률곡선통제(YCC)를 점차 완화하고 금리를 0.25%에서 0.5%로 올렸다. 정말 오랫동안 유지해온 초저금리 시대를 접고, 일본판 긴축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일본 내 물가와 임금이 생각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어서다. 예전엔 엔화 약세를 앞세워 수출기업들이 수혜를 입고, 그 덕에 경기 부양이 되는 그림이었다면, 이제는 ‘너무 약한 엔화’로 인해 수입물가가 치솟는 등 부작용이 커졌고 임금도 인상 추세라 통화정책 정상화를 손놓고 미룰 수 없게 된 것 같다.
이런 BOJ의 스탠스 변화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되돌리는 큰 변수가 된다. 일본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엔화를 빌려 다른 통화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이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는데, 이젠 일본 금리가 점차 오르니 수익성이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서서히 청산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엔화가 강세로 전환되는 국면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사실 작년 말~올해 초만 해도 엔화 환율이 달러당 150엔을 넘어서는 초약세를 기록했지만, BOJ가 금리를 올린 데 이어 연준은 오히려 금리 인하를 준비하는 시그널을 보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만약 미국 금리가 본격적으로 인하 국면에 들어가고 일본 금리는 지금처럼 조금씩이라도 올라간다면, 미·일 금리 격차가 줄어들어 엔화 강세가 점진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정 상의 시나리오)가 연준에 직접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보다는 10년물 국채 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경기 부양을 꾀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친 점도 흥미롭다. 미국 입장에서는 10년물이 각종 장기 대출의 기준이니, 이 금리만 잘 관리해도 경제 전반에 완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에너지 규제나 금융 규제를 완화해서 물가 기대와 위험프리미엄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10년물 금리를 끌어내리려는 그림이다. 실제로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면 유가가 안정되고,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국채시장에서 10년물 금리를 떨어뜨리는 연쇄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달러 가치 역시 무작정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일본과의 금융 협력을 통해 미국 국채 수요(=국채 가격 상승, 금리 하락)를 확보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듯 미국과 일본 모두 금리, 환율에서 상당히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가운데 투자자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다. 금리가 오르든 내리든 크고 작은 변동이 시장에 즉각 반영되고, 환율 역시 BOJ 회의나 미국 경제지표 결과에 따라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관망만 하기도 어렵다. 이미 채권금리는 예전보다 훨씬 올라서, 보수적으로 봐도 일정 수준의 쿠폰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기만 하면 채권 투자로 실질 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주식시장 역시 한 번씩 출렁거리기는 하지만, 미국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늦어지거나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다는 관측이 퍼지면 다시 반등할 가능성도 있겠다.
요즘 해외 투자자들이 많이 얘기하는 전략 중 하나가 단기채와 장기채를 동시에 사들이는 ‘바벨 전략’이다. 금리 변동에 맞춰 재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단기채를 갖고 있지만, 경기 둔화 시점에 금리가 더 내려가면 장기채는 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엔화 투자도 흥미롭다. BOJ가 금리를 조금 더 올리고, 미 연준이 생각보다 빨리 완화 사이클에 들어가면 엔화 강세 흐름이 꽤 뚜렷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엔화는 전통적으로 시장이 불안할 때 ‘안전통화’ 이미지로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미국이 다시 경기침체 위험 신호를 보이면 그때도 엔화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한때 “엔화는 죽은 통화”라며 외면받았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오갈지도 모르겠다.
결국 중요한 건 포트폴리오 분산과 유연한 대응인 것 같다. 금리와 환율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채권과 주식을 적절히 섞고 통화도 달러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엔화 등 다른 안전통화도 고려해 두는 식이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치솟을 위험을 대비해 물가연동채나 금 같은 자산을 약간 포함해 두는 것도 안심이 된다. 만약 연준이 금리 인상을 재개할 정도로 물가가 다시 뛴다면 채권가격이 하락할 수 있으니, 그때는 듀레이션을 줄이거나 다시 주식 비중을 조정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매번 나오는 지표와 중앙은행 발언이 쉽게 읽히지 않는 시기이니만큼 “너무 한쪽 베팅에 올인하지 말고, 어느 정도의 보호장치와 변동성 대비책을 갖추자”는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앞으로 몇 달간 발표될 경제 지표와 BOJ, 연준의 결정이 흥미진진할 것 같다. 선거와 정책 이슈도 계속 얽히면서 상당한 파고가 예상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과거 오랫동안 누려온 초저금리 시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균형점이 형성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시장 입장에서는 당장은 불확실성이 번거롭지만, 그만큼 새로운 투자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도 커진다. 과연 2025년에는 미국 금리가 얼마나 내려가 있고, 엔화 환율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당장은 길이 잘 안 보여도,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대응 전략을 세워두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이 변동기를 헤쳐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너무 한쪽 전망에만 기대기보다, 시장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지금 시점에서는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프트웨어 패러다임의 전환과 기업의 대응전략 (1) | 2025.02.17 |
---|---|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2) | 2025.02.17 |
ai 는 놓쳤더라도 휴머노이드는 놓치지 말자 (3) | 2025.02.17 |
현대제철의 미국공장 건설이 돌파구가 될까? (1) | 2025.02.17 |
쉽게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구나 (0) | 2025.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