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AI 에이전트 시대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가 말한 요점은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써온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이를 구독형으로 제공해왔던 SaaS 모델의 개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너무 과장된 전망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한편으론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변화를 실제로 밀고 나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기존 백엔드 시스템을 과감하게 줄이고, 에이전트(Copilot)를 중심에 두어 여러 데이터베이스와 작업 툴을 넘나드는 식으로 소프트웨어 로직을 재구성한다는 접근은 상당히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직접 몸담고 있는 개발 현장이나 기업들의 대응 사례를 보면, 이미 작은 파문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ynamics 365 같은 SaaS 백엔드를 대대적으로 단순화하면서, Copilot이 필요한 정보를 여러 곳에서 뽑아 조합하고 로직을 실행하도록 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를테면 사용자가 어떤 계산이나 업무 요청을 하면 Copilot이 아웃룩, 팀즈, 엑셀, 데이터베이스 등을 적절히 연결하고 필요한 분석이나 수정을 알아서 수행한다. 조금 더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람은 Copilot에게 전체적인 요구사항만 전달하고, Copilot은 세부 단계를 각 애플리케이션에 내장된 에이전트에게 지시하는 식이다.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은 정해진 역할에 특화된 작업을 책임지고, Copilot이 전체 흐름을 조정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엑셀 사례가 흥미롭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엑셀에 파이썬이 통합된 일을 두고 꽤 화제가 됐는데, 사실 이것이 단순히 엑셀 기능 확장으로만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파이썬 기반의 강력한 데이터 분석 능력이 엑셀 내부에 녹아들었을 뿐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선 자연어를 사용해 Copilot에게 질문하면 알아서 분석이 진행되는 그림이 펼쳐진다. 예전에는 엑셀 공식과 VBA 스크립트를 직접 만지며 애써 구현했던 로직을,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자동으로 만들어주고 실행까지 마친다. 그동안 프로그래밍 언어에 익숙치 않았던 사람들도 데이터 분석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예전에 깔끔한 그래프를 하나 그리기 위해 수십 줄의 공식과 함수를 만들던 과정을 생각하면, 시원섭섭하면서도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델라의 발언 중 가장 파격적으로 들린 부분은 애플리케이션과 SaaS의 종말 가능성이다. 당장 모든 SaaS가 없어지겠냐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껏 각 SaaS가 자랑해온 비즈니스 로직이 AI 에이전트에게 흡수될 수도 있다. 결국 많은 SaaS가 CRUD(데이터 생성, 조회, 수정, 삭제)와 그 위에 얹힌 비즈니스 규칙으로 구성된 게 사실이니까. 만약 AI가 여러 데이터 소스를 자유롭게 오가며 로직을 수행하고, 필요한 작업을 일괄적으로 해낸다면, 개별 SaaS의 인터페이스를 사람이 직접 들어가 사용할 이유가 점점 줄어든다. 오히려 SaaS가 단순 데이터 저장소 역할로 전락하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에이전트가 가져가는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도 있다.
이런 흐름을 마냥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자율형 AI 에이전트가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은 환각 문제나 안전성, 규제 준수 등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예컨대 이메일을 자동으로 보내는 에이전트가 멋대로 잘못된 주소로 중요 정보를 유출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실제 기업 환경에서는 DB 직접 수정 같은 업무를 AI가 전적으로 맡게 하기 전에, 이중·삼중의 승인 과정을 두거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SaaS 회사들이 이런 AI 기능을 자사 플랫폼에 단계적으로 접목하면서, 기존 고객에게서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욱 정교한 서비스를 선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세일즈포스는 아인슈타인 GPT와 에이전트포스라는 개념을 발표하며, CRM이나 슬랙, 태블로 같은 기존 툴과 AI 에이전트를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어도비도 파이어플라이라는 생성형 AI 모델을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에 내장해 그래픽 작업을 자동화했고, 구글은 워크스페이스 전반에 듀엣 AI를 붙여 이메일 작성부터 스프레드시트 분석까지 지원한다. 이처럼 주요 SaaS 업체들은 AI가 가져올 파고 속에서 서비스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발 빠른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변화를 느끼는 건 개발 현장도 마찬가지다. 개발자들은 예전처럼 일일이 코드를 짜기보다, 이제는 프롬프트를 통해 AI 도구에게 원하는 기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AI가 생성해주는 코드를 검토하고 수정하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엔 흥미 반, 의심 반으로 GitHub Copilot 같은 코딩 보조를 써보았는데, 어느새 프로젝트 진행 속도가 두세 배 빨라졌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듣게 된다. 물론 여전히 생성된 코드가 오류를 일으키거나 부정확한 결과를 내놓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오류 자체를 찾고 수정하는 과정도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AI가 내놓은 코드를 사람이 검수·테스트하면서 개선하는 방식이 반복되다 보면, 최종적으로 원하는 기능이 더 빠르게 완성되기 때문이다.
자율 에이전트라고 불리는 녀석들은 단순한 코드 생성 수준을 넘어, 작업을 여러 단계로 쪼개 계획하고 필요한 툴을 검색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Auto-GPT나 BabyAGI 같은 프로젝트들은 사람 대신 마케팅 기획, 웹 리서치, 이메일 작성 등을 연쇄적으로 수행하는 데모로 화제가 됐다. 다만 자율 에이전트가 내놓는 행동은 아직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이들은 대규모 언어 모델에서 파생된 특성상,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지어내는 환각이나 비논리적 결론을 도출할 때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위험도 높은 작업(예를 들어 재무 데이터 변경, 데이터베이스 구조 수정 등)을 맡기지 않고, 반드시 사람이 허가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 식으로 통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AI 에이전트를 도입할 때는 그동안 구축해온 보안 체계, 권한 관리, 데이터 무결성 방침을 어떻게 결합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 한 가지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AI와 기존 시스템의 통합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은 이미 ERP, CRM, 제조 관리 시스템 등을 폭넓게 사용 중인데, AI 에이전트를 실무에 투입하려면 이런 레거시 데이터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세일즈포스는 수십 개 시스템과 쉽게 연동 가능한 커넥터를 제공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애저 기반으로 안전하게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상당수 회사들이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기법으로 AI 모델이 실제 DB에 질의해 필요한 정보를 가져오고, 그 결과를 다시 자연어로 정리해주는 방식을 실험 중이다. 이런 통합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기업이라면 AI 에이전트가 제시하는 업무 자동화나 지능형 분석의 이점을 제대로 누릴 수 있지만, 반대로 보안 위험이나 규제 미준수 가능성을 높이지 않도록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 와중에 재미있는 건 새롭게 떠오르는 플레이어들이다. 투자자 차마스 팔리하피티야가 이끄는 80:20이라는 스타트업은 AI를 이용해 기존 SaaS 기능의 80%를 20% 가격으로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겉보기에는 허황돼 보이지만, 지금의 AI 기술이 의외로 많은 부분을 자동화하고 있고, 예전에는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던 작업이 점차 효율화되고 있다. 그래서 일부 기업들은 값비싼 SaaS 라이선스를 줄이려 하거나, 새로운 AI 솔루션으로 대체를 모색하고 있다. 물론 기존 SaaS 기업들도 눈 뜨고 뺏길 리 없으니, 더 적극적으로 AI를 도입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맞서고 있다. 그래서 당장의 종말이라기보다는, SaaS 업체 간 AI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으로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한편 기업 입장에서 AI 에이전트를 현장에 도입하기 시작하면, 바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세일즈포스가 주장하는 디지털 노동자라는 개념은 꽤 파격적이다. 반복적인 문의 대응이나 단순 CRM 관리 같은 일을 AI 에이전트가 처리해 기업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는 실제 예시가 나오면서, 기업들은 사람의 업무 일부를 에이전트로 대체하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가서는 마케팅 전략, 고객 맞춤형 추천, 이커머스 주문까지 통합적으로 해주는 완전자율 에이전트 서비스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AI가 정말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규정에 위배되지 않게 각종 데이터를 다룰 수 있어야 하며, 고급 이슈는 아직도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문턱이 여러 개다.
결국 이 모든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개발자들의 역할 재정의가 놓여 있다. 과거에는 정확한 코드를 많이 작성하는 능력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AI를 어떻게 잘 활용하고 통제하느냐가 핵심 역량이 됐다. 문제 자체를 구조화해 AI가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는 프롬프트 작성 능력, AI가 만든 코드를 리뷰하고 아키텍처에 맞게 통합하는 능력, 예상치 못한 에러나 보안 문제를 탐지해 재학습 또는 재프롬프트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주목받는다. 특정 도메인 지식과 기업 비즈니스 맥락을 제대로 알고 있는 개발자는 더 가치가 높아질 것이고, 단순히 코드만 작성하던 사람은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개발자들이 AI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협업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려 노력한다. AI가 줄여주는 코딩 시간을 활용해 문제 해결 능력을 더 끌어올리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나델라의 표현처럼 누구도 이 물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AI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혁신하기를 주저하면 어느 순간 시장이 확 바뀌어버릴 수 있다. 이미 여러 산업 분야에서 AI-퍼스트로 전환한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고, 성공적으로 안착한 곳들은 생산성 개선이나 ROI 증가 같은 가시적 성과를 보고 있다. 반면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보안 사고나 품질 문제에 부딪혀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는 기업들도 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기술만큼이나 거버넌스, 안전장치, 조직 문화가 함께 준비되는 일이다. 작은 시범 프로젝트로 AI 에이전트 활용을 실험해보고,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으며, 점차 중요한 업무로 확대해가는 접근을 추천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진이 먼저 AI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사내 교육과 가이드라인을 체계적으로 갖추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AI 에이전트는 분명 업무 효율과 혁신을 가져다주는 도구지만, 아직 새내기 사원이 실수도 하고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하는 모습에 더 가깝다. 조금씩 경험을 쌓고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면서 성장하는 AI를 우리가 얼마나 지혜롭게 다루느냐가 향후 수년간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사티아 나델라가 굳게 믿는 미래처럼 애플리케이션 중심이 에이전트 중심으로 완전히 이동할지, 아니면 SaaS와 AI가 공생하며 새로운 형태로 융합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든, 지금 이 순간의 AI 도입 전략이 몇 년 뒤 우리 회사와 업계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건 틀림없어 보인다.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오고, 준비되지 않은 자는 그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답은 결국 스스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AI 에이전트 시대를 항해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노하우와 전략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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