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공무원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 같다. 사실 공무원하면 안정적인 직장, 꽤 높은 사회적 신뢰, 그리고 연금 같은 복지 제도가 먼저 떠오르곤 했다. 그런데 최근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사표를 던진 노한동 씨의 사례는 그런 환상을 단숨에 깨뜨린다. 그가 직접 쓴 책에는 공직 업무의 70%가 사실상 헛짓에 가깝다는 폭로가 담겨 있다는데, 그 내용이 참 적나라하면서도 씁쓸하다.

그는 10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일하면서 쌓인 무기력과 무력감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고백했다. 한 해 예산을 설명하는 자료만 해도 수십만 페이지. 그런데 한 번 실린 오타가 몇 년씩 방치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문서를 매번 복사해내기만 하는 건데, 이게 과연 노동인가 싶을 정도로 허망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부서를 1~2년마다 이동하다 보니, 근본적인 문제를 고쳐보려는 동기도 찾기 어렵다. 그냥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러가니, 그 구조 안에서 주인 없는 책임이 계속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이런 현실을 현장에서 마주했을 때 내 마음속에도 궁금증이 떠오른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효능감을 잃어가는 순간, 버티기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공무원이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분명 존재하니, 조직을 떠나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했을 거다. 노한동 씨가 승진과 동시에 사표를 낸 건 그만큼 구조적 무능과 무책임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과거 사회적 위기를 맞았던 123 내란 사태 때 보였던 일부 장관과 고위직들의 소극적 태도는, 조직 전체가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잘 보여준다. 정작 위기가 닥치면 책임져야 할 자들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권위와 지위는 챙기면서 중요한 결정은 회피하거나 뒷걸음질 치고. 간혹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왜 일을 안 하려 드느냐”는 식의 핀잔을 듣기 일쑤라니, 결국 혁신을 시도하기는커녕 침묵을 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게 씁쓸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시스템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노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업무의 70%를 아예 없애고, 불필요한 보고서와 문서작업, 의전, 잡다한 회의 등을 확 줄일 수 있다면, 공직사회가 한층 가벼워지고 국민을 위한 정책 설계에 집중할 여력이 생길 것이다. 문제는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어 온 관료적 절차는 그 뿌리가 아주 깊고 넓다. 한번 잡초가 무성해지면 그 뿌리를 다 걷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해보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사례가 미국의 정부효율부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에 새롭게 출범한 이 부서는 말 그대로 정부 조직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름도 매우 직접적이고, 주도하는 사람들도 심상치 않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와 기업가 비벡 라마스와미가 공동 수장이라니,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튀어나올 법도 하다. 이들은 연방기관을 400여 개에서 99개로 확 줄이고, 대대적인 예산 절감을 통해 2조 달러 이상의 지출을 아낄 계획을 내놓았다. 사실상 미국 정부라는 크고 단단한 조직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수준의 작업이다.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해 예산 삭감 대상을 식별한다는 이야기는 꽤 혁신적이면서도 동시에 우려스럽다. 민감한 정부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킨다는 건 보안 문제도 있을 테고, 데이터가 정말 객관적이면서도 철저히 분석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그래도 막대한 예산이 낭비되는 영역을 인공지능이 빠르게 찾아낼 수만 있다면, 전통적인 관료제 시스템을 뒤흔들 만한 강력한 무기로 기능할 수는 있을 것이다.

더 흥미로운 건 머스크가 실리콘밸리 임원들을 무급으로 주 80시간씩 근무하게 해서 정부 부처에 배치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실험적이면서 동시에 급진적이라 볼 수 있다. 민간기업의 혁신적인 마인드를 공직사회에 이식하려고 하는 의도가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히 혹독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자원하거나 선발된 이들이 정부 안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본인 스스로도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결국 미국이건 한국이건 거대하고 복잡한 관료제를 바꾸는 일은 상당한 저항과 혼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사례에서는 자발적으로 내부 고발을 택하거나, 구조적 비효율에 견디지 못해 조직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상황이다. 미국은 더 노골적인 방법으로 아예 조직을 뜯어고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 방법이 더 실효성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공직사회를 그대로 둬서는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노한동 씨가 말하는 업무 70% 축소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솔직히 반은 의문을 품고, 반은 희망을 갖고 있다. 정말 그 정도로 마른 수건을 짜내듯 필요 없는 작업만 쏙 빼내면 공직사회의 효율이 확 올라갈까. 반면,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행정 공백이나 관리 소홀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이런 질문들은 정답이 선명히 나와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핵심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 아닐까. 기껏 예산을 세워놓고도 아무도 사용 방법을 모르는 문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나라 살림을 맡았다는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느냐, 아니면 그저 자리를 지키느냐. 그 차이가 모이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좌우된다. 지금 한국 공직사회가 겪는 문제도, 미국 정부효율부가 도전하는 개혁도, 결국 그 지점에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과연 한국과 미국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는 공직사회 및 관료제 혁신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궁금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고민은 확고해졌으면 한다. 노한동 씨가 불을 붙인 이 문제 제기가 허투루 흘러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도 공무원이 된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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