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팅이 기존 컴퓨팅과는 완전히 다른 작동 원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눈길을 끈다. 수십, 수백 개의 큐비트를 운용하면서, 원자나 분자처럼 초미세 단위를 완벽히 시뮬레이션한다니,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기이하면서도 놀랍다. 특히 이 기술이 화학이나 재료 과학 분야에서 빛을 발하면 자가 복원 소재나 미세 플라스틱 제거 촉매 개발 같은 혁신이 가능하다고 하니, 지금까지 인류가 풀어내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예전부터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실험적으로 증명하고, 거기서 위상 물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찾아냈다는 점에 있다. 이런 발견이 에러 보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양자 컴퓨터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된다고 하니, 연구진 입장에선 흥분되는 일이겠다. 큐비트가 불안정해져서 연산이 엉키는 상황을 대폭 줄여줄 수 있다면, 칩 하나에 100만 개 이상의 큐비트를 넣겠다는 꿈도 단순한 허황된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자 컴퓨팅이 곧장 상용화될 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구글은 5년 뒤를 낙관하고, 엔비디아 측에서는 20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또 몇 년 안에 실용 연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각자 추정치가 다 다른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유한 24개의 논리적 큐비트가 3개월 주기로 두 배씩 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어느 시점에선가 슈퍼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훌쩍 뛰어넘을 기계가 실제로 등장할 수도 있겠다 싶다.
양자 컴퓨팅이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으면, 화학과 재료 과학뿐 아니라 의약, 에너지, 환경 같은 분야에서 혁신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AI 기술도 분자나 물질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결국 기존 데이터나 패턴을 토대로 예측한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양자 컴퓨팅은 자연의 근본 원리를 직접 계산한다는 점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물질이나 특성까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인상적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나 중국 같은 국가들이 국가 차원에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DARPA처럼 국방 차원의 예산이 투입되면, 기업들은 연구비 걱정보다 좀 더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연구 지원과 기술 투자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되어 왔는데, 여기에 더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얘기까지 나온다거나 정치적 분열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이런 미래 기술에 집중하기는커녕 국가 차원의 지원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는커녕 서로 갈등만 심해지고 있다. 양자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발 빠른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려오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중요한 타이밍에 다른 이슈들로 시끄러우니 한숨이 나온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답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 기술 경쟁이 국가 단위로 진행되는 시대에는, 정부가 얼마나 관심을 두고 투자하느냐가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 컴퓨팅은 AI나 클라우드처럼 서버만 잔뜩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높은 수준의 연구 인프라와 인력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를 보면, 단순히 큐비트 숫자를 늘리는 데 급급하기보다 실제로 유용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진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게 단기간엔 잘 드러나지 않아도, 몇 년 혹은 몇십 년 뒤에는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
양자 컴퓨팅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장에 뛰쳐나와 세상을 바꾼다기보다,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넘어가던 1940년대처럼 서서히, 그러나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거라는 데 공감이 간다. 가까운 미래에 어떤 형태로든 실험적인 시제품들이 나온다면, 화학 시뮬레이션이나 재료 연구에서부터 폭발적인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안정성과 확장성을 갖춘 양자 칩이 얼마나 빨리 개발되느냐, 그리고 그 개발된 칩이 실제 산업 현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가적·기업적 지원이 얼마나 뒤따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정작 우리는 이런 중요한 시점에 내부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정부와 기업이 함께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 부럽고, 때론 답답하다. 과연 이대로라면 정말 미래 기술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지금 상태를 타개할 만한 흐름이 하루빨리 등장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양자 컴퓨팅 같은 혁신적인 기술이야말로, 한국이 다시 도약할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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